전통적인 의미의 순결을 설명함에 있어서 맬서스의 양성제어(positive check)와 예방적 제어(preventive check)에 대한 논의는 세련됨을 넘어서 탁월함을 보인다.

전통적 시스템의 한 부족내에서 존재하는 인구의 숫자는 그 부족의 존속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이었다. 토지에서 나올 수 있는 생산성은 한정되어 있고 구체적인 피임의 방법 자체가 마련되어있지 않던 그 시절에 청춘 남자와 여자를 한 방에 몰아넣고 10개월이 지난 뒤에는 최소 3명 이상의 사람이 되어 나올(임신에서 쌍둥이까지 생각하라) 가능성이 크다고 맬서스는 밝힌다.

맬서스는 그 가운데서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한 개체를 만들어내는 번식욕구를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그런 전제는 많은 부족 집단 혹은 국가라는 시스템 하에서의 행정구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고, 소속된 사람들은 종종 그들의 주변 생산성이 버틸 수 있는 최대치만큼의 자손을 갖곤 했다. 그 가운데서 맬서스는 인구의 수가 가져오는 두가지 양상인 양성제와 예방적 제어를 말한다.

여기서 양성제어라함은 기근 혹은 좁은 밀도에 높은 인구가 몰아 살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일종의 전염병과 같은것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인구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하고, 예방적 제어라함은 그 가운데 그 집단의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규칙을 정하여 전체 집단의 인구의 수를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것이다. 

식물의 생산에 있어서 고전적인 야생상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집단의 경우에는 예방적 제어에 비하여 양성 제어의 가능성이 크게 나타난다. 매년 수확량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확량이 좋은 시점에서의 사람들은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낳고, 수확량이 좋지 않은 시즌이 다음해에 닥치면 사람들은 모두가 같이 굶거나 혹은 자신의 아이를 잡아먹거나 혹은 다른 부족과 전쟁을 하여 다른 부족에서 양식을 약탈하거나 혹은 인육을 섭취하는 방법을 채택한다. 

그에 반해 예방적 제어의 방법은 그 인구의 숫자를 규범이라는 이름하에 자체적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대개 이런 형태의 규범은 그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장로나 혹은 연장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무조건 많은 아이를 낳는것을 금하기 위하여 남자와 여자를 일정나이까지 결혼을 못하게 한다거나, 혹은 남성을 고된 노동으로 혹사시켜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동시에 성욕을 감퇴시키고. 집안에서 가사를 담당하는 여성의 경우에도 같이 밖에서 혹사를 시킨다거나 아니면 여성의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음핵을 어린 나이에 절제하는 것을 일종의 규범으로 만듦으로써 여성의 외도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배제하고 부부사이에 별도의 욕정의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금하여 근면성실하며 동시에 적은 인구의 출산을 목적으로 한데에 있다 하겠다.

언듯보면 굉장히 야만스러워보이지만 인구의 수를 조절함에 있어서는 그것은 정말로 탁월한 방법이었고, 이런 규칙을 지키지 않는 부족은 필연적으로 양성제어를 맞게 됨으로, 인간의 본능적인 성욕을 제어하여 인구의 수를 줄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맬서스의 관점에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순결의 개념과 한국내에서의 순결의 개념은 일종의 규범으로써 예방적 제어에 해당할 것이다. 결혼하기 전의 여성에게 순결을 권하고 이를 강요함으로써 결혼이라는 의식을 거쳐야만 그에 따른 아이를 출산하게 되는 방법을 채택하고, 또한 그 가운데서 남성과 여성이 아이를 양육할만한 충분한 능력이 되어야 실질적으로 그들의 아이를 효과적으로 양육하게 만들 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서 남성의 생산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고 여성은 조신함과 집안의 일을 잘 하는것이 요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물질적 풍요 이후 순결 자체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왜 오늘날에도 순결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순결시스템이 결혼의 선제조건이 되는 방법으로 그 명맥을 이어왔다고 본다.

이를 1980년대까지 혹은 지금까지 한국에 행해지고 있는 순결과 결혼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조금은 이해해 볼 수 있겠다. 남자는 결혼에 지참하는 것이 집과 적합한 생산성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었고 여성은 그 집안을 구성하는 혼수였다. 이것은 관례적으로 그래왔던 것이고, 그런 전제가 있어야 그들의 아이를 효율적으로 양육할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순결에 대한 것은 결국 이런 물질적 전제가 되어야 그들의 아이를 좀 더 적합하게 기를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은 결혼전에 몸을 함부로 놀려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 아이를 양육하기가 쉽지 않고, 더욱이 그 아이를 사랑만으로 기를 수 없다는 굉장히 자명한 어구는 남자에게도 적용되어 생산성을 갖추는 훈련이 온전하게 되지 못한 남자도 이 부분에 적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현재까지 행해지고 있고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는 혹은 권해지고 있는 순결에 대한 개념은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규범의 원리를 나이드신 분들이 이해하든 혹은 이해하지 않든 그들의 자손에게 혹은 어린 아이들에게 권하는 이유는 어찌보면 그들의 후손이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방법을 채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할 것이며, 이것은 악습이 아니라 오히려 양속의 한 명맥이 닿아 있다 할 것이다. 

물론 이런 반박이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에는 콘돔이나 혹은 인공낙태와 같은 확실하게 그들의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해당 방법을 통한다면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이며, 굳이 순결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하겠으나, 콘돔도 역시 항상 임신의 가능성을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으며, 여성의 경우에도 끝없이 낙태할 수 있을만큼 자궁이 건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의 적령에 있는 남성이 여성을 부양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할 경우 왜 순결한 여성을 찾으려고 하는가 한다면, 그것은 자궁이 건강한 여성을 찾고 자신의 자손이 건강하기를 기대하는 심적 상태일지도 모르겠으며 더 나아가서 순결을 쉽게 지키지 않는 여성이 자신의 몸이나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은 사회가 분명 바뀌었다. 과거와 같이 남자가 밖에서 일하고 여자가 집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둘 다 밖에서 일할 수 있는 생산성의 증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또한 아이의 양육비용에서 교육비용이 차지하는 부분이 급속도로 증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과거에는 밥만 먹여주면 혼자 알아서 다 했을 아이, 게다가 집안에서 가사노동을 돕고 농사일을 도왔을 아이가 오늘날에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만 그 아이가 제 기능을 할 것은 오늘날의 과도하게 커진 교육시장과 암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명문대학생에게 요구하는 고액과외와 같은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순결과는 별개로 이런 이유의 쓸 데 없는 과도한 아이에 대한 투자와 그것을 조장하고 그것으로 먹고사는 비생산적인 집단과 출산율 및 결혼율의 감소는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다음 세가지 질문는 던질만하다.

1.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가난을 겪는 이유는 결국 그들의 생산성이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들에게 예방적 차원의 관습이 주어져 있지 않고, 가장 원시적으로 생산량만큼 아이를 출산하는 동물적 욕구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을 때, 그들이 가난하여 밥을 먹지 못함에 연민을 느껴 그들에게 한끼 밥이나 식사를 제공해주는 것은 한정된 생산성에서 자체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인구수의 왜곡을 불러오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유니세프의 지원이나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지원은 정말로 단기적인 해결만 가져올 뿐 장기적으로는 그들을 더욱 더 괴롭게 만들고 그들에게 지원한 자원을 전혀 무용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얼마나 바보같은가?

2. 아프리카에서 아직까지 이행되고 있는 여성할례에 대해서 인권단체들이 야만적임과 미개함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그들이 원래부터 유지해왔던 인구를 조절하는 방법을 전면적으로 상실하게 되어 그들은 다시금 양성제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여성의 성적쾌감을 위해서 그 부족 전부의 생명을 위협하는 그들의 작태는 정당한가? 

3. 본연의 여권신장을 시위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오히려 이런 측면에서는 여권신장이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풍요에 따른 여성의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해방 및 분업의 해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가 모든 아이를 양육한다든지. 
그렇다면 오히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이 여성으로 하여금 집안에서 업무의 강도를 낮추었고, 그들에게 생식의 분업측면 측면에서는 더 큰 기회를 제공해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면적으로 여성 시위가 의미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경제발전을 했기 때문에 여권신장이 얻어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관계는 엄격하게 논구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종합유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