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아버지하고 어머니와 같이 63빌딩에 있는 레스토랑에 몇 번 간적이 있다. 방금 피곤해서 누워있다가 문득 그 상황의 정경이 떠올랐다. 서로 같이 짝지어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약한 소란스러움과 함께 감미로운 음악이 들려오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야경은 검디검은 밤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던 별들과 같이 화사하고도 도시적이었던 것 같다.
1990년대 당시에는 그다지 음식의 다양성이 없어 코스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샐러드에 메인디쉬 정도의 식사였고 아마 내가 관심있었던 음식은 간단한 육류 중심의 음식. 일식은 내 고려사항에 없었던 것 같은데, 고급음식으로 여겨졌던 초밥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던것은 내 기억상 2000년대 즈음이었던 것 같다.
레스토랑은 크게 두 종류로, 하나는 부페식이었던 것 같고, 다른 하나는 코스식이었던 것 같다. 부페식의 특징은 따뜻한 조명이 비추고 있는 불빛 아래 전형적인 음식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 잘 장식된... 알류미늄제 은색 그릇이 있었다. 그릇을 열면 주홍불빛이 음식을 비추고, 그런 그릇이 줄을 이루어 기다란 식탁위에 나열되어 있었다. 마치 보석상의 진열장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으로 그 음식은 달콤해 보였고, 세련되어 보였다. 가깝게 붙어있던 탁자와 탁자는 사람들의 친구들끼리온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던 연인의 이야기들이 나에게 전해지는 듯한 소란스러움이 있던 곳이었다.
그에 반해 코스식 레스토랑은 그 분위기에 맞추어 식탁과 식탁간의 거리를 조절해 마치 거대한 홀 안에 들어와 여유롭게 홀로 음식을 즐기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던것만 같다. 사람들에게 식사를 운반해주는 종업원과, 당시 레스토랑의 전형적인 인모장판으로 깔려있던 바닥의 느낌, 전형적인 4인탁자와 알 수 없는 가죽문양으로 둘러쌓인 소파는 그 느낌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던것 같다. 그 공간은 마치 나와 나의 부모님만을 위해서 준비된 공간과 같은 느낌을 주었고, 그 가운데의 '잔잔한 음악'은 부페식과 다른 아늑함, 고요함, 고풍스러움, 세련됨을 느끼게 했던것 같다.
당시의 추억을 나는 지금은 온전히 상기할 수 없다. 당시에 들려오던 노래의 이름도 지금은 잘 모르겠으며, 당시 먹었던 식사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 그리운 것은 그 분위기. 따뜻하거나 혹은 세련되게 나를 비추고 공간의 느낌을 주었던 그 곳. 때로는 왁자지껄한 휴양지의 호프의 느낌을 나게 해주었던 혹은 그 분위기에 취해 음식을 차분히 즐길 수 있었던 그 곳.
더 이상 그 레스토랑은 있지 않겠지만, 오늘 나는 문득 그 레스토랑에 누군가와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곳에서든지, 그 차분하거나 왁자지껄 했던 63빌딩 레스토랑의 기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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