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상당히 쉽게 사용합니다.

뭐 일상적으로 민주주의라는 말은 쉽게 사용할 수 있지요? 뭐 민주적인 절차라던지,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던지 말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 민주주의라는 개념의 의미는 은근히 쉽게 바뀝니다. 법 앞의 평등으로 따지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차원에서 본다면 국민에게 주권이 있고,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행하는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선택의 주체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국민'이라는 대상은 사실 모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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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설명하기 위해 엄밀하지는 않지만 쉬운 예시를 들어 구분될 수 있음을 발견해봅시다. 甲이라는 사람이 乙이라는 사람을 설득하여 乙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A라는 행동을 하게끔 만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에 乙은 A를 자신의 의도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것에 대한 관점은 두 가지고 구분됩니다.

하나는 사실상 乙은 甲에 의하여 행동을 강제 당했음으로 행동 A는 순수한 乙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으며, 이것은 甲이 계략으로 乙의 선택을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乙의 행동으로 보기 보다는 甲의 의도에 乙이 종속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설령 乙의 행동이 甲에 의해서 강제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乙은 자신의 판단에 의거하여 선택을 내렸고, 甲은 乙에게 판단을 위한 '근거'를 제공해주기는 했으나, 선택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하나의 개별적인 정보를 넘어서서 자신의 사유체계내에서 내릴 수 있는 그 순간의 '최적'의 선택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乙의 행동이 甲에 의하여 강제 당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甲의 의도에 乙이 종속되었다고 볼 수 없으며, 이것은 乙의 선택이다.

전자의 설명을 따른다면 현실관계에서는 사람들간에 서로 힘에 의하여 상호종속되고 있음으로, 실질적으로 하나의 판단이라 함은 순수하게 자신의 판단이라고 볼 수 없으며 타자와 연관된 판단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합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선택의 주체'라고 하는 대상은 모호해집니다. 후자의 설명을 따르자면, 어떤 특정 행동에 대해서 엄격하게 구분되는 개인의 판단을 구조할수는 있습니다만, 이것을 구조하기 위해서는 개별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이 발생합니다. 또한 규범의 강제성이 어떻게 효력을 발휘하는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야합니다.

전자의 방식으로 본다면, 이제 주권의 대상을 특칭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분명히 개별자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나, 그 권리의 실행의 의도가 타자에게 종속됨으로 순수하게 개인이 자신의 의도대로 '권리'를 실행했다고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렇다면 개인이 주인된 권리를 행한다고 하는 것은 타자에 의해서 주인된 권리를 행하게 됨으로, 결국 한명이 두명 이상의 주인된 권리를 행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후자의 방식으로 본다면 주권의 대상을 특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격하게 구조하기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앞과 같은 '인지적인 문제'가 붙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통 '타인을 자신과 같은 것으로 대하라'라는 덕목과 같은 것이 자주 붙습니다.

아주 가벼운 '차이' 하나만으로도 민주주의의 실질이 바뀝니다. 후자의 민주주의를 따지는 사람은 전자의 민주주의가 순수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사실 전자의 민주주의를 따지는 사람의 경우에도 후자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님을 말하겠지요. 같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서로 다른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것으로 본다면 '너가 말하는 민주주의'가 '내가 말하는 민주주의'와 같으냐는 항시 따져봐야 할 문제가 될 것이고,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던지 아니면 그와 비슷한 문제들에 대해서 주장하는 사람들의 케이스에도 자신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그저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가치적인 민주주의인지 아니면 객관적인 실질을 지칭하는 민주주의인지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종합유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