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단순히 내 소견이고 온전한 사실에 대해서 진술하는 것이 아님을 글을 쓰기에 앞서 명시한다. 논리상의 결함이나 혹은 더 설명력을 가진 '제안'이 아닌한에야 답장은 하지 않는다.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고 보통 말을 하는데, 사실 이 관점은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과거에는 원시적인 의미에서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에 합당한 죄책인 사형을 받아야 한다.'라는 주장이 있었다. 이것은 흔히 복수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근대적인 의미에서 따진다면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꼭 그 사람이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필연적 연관의 논리는 부정된다. 위험하지만, 나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3편 자비로운 여신들에는 현대적 의미의 규범 그리고 법에 대한 상징적인 배경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중 2부작에서,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아가멤논'을 살해한 자신의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를 자신의 합당한 이유...로 살해한다. (사실 오레스테스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근거에는 단순히 아버지를 위한 복수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자비로운 여신들의 초반부에서, 아테네의 법정에서 자신의 구형 문제를 두고 구규범을 상징하는 복수의 여신들과 아테네의 중재하에 '재판'을 신청한다.
이 재판은 인상깊다. 재판 초반부에 오레스테스는 자신이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천병희 역, 자비로운 여신들 § 587) 이에 대해서 복수의 여신들은 그는 사람을 살인했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죄책을 받아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 그는 '친족살해'라는 저질러서는 안 될 끔찍한 죄책을 범했음으로 그 죄책은 더욱 크다고 말을 한다. 이 부분은 앞서 제시한것과 같은 '복수법'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 여기에서는 '끊이지 않는 가정의 불화'라는 말로 복수의 개념을 설명하는데, '사람을 살해함'이라는 사건이 복수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매우 상징적이고 적합한 비유라고 나는 바라본다.
*사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가멤논의 가정사를 좀 이해해야 한다. 오레스테스의 아버지는 아가멤논, 그의 할아버지는 아트레우스이고, 그 아트레우스의 형제는 튀에스테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튀에스테스가 아트레우스의 부인과 정분이 났다는 사실을 인지한 아트레우스는 튀에스테스의 아들들을 잘 구워서 튀에스테스에게 대접하고, 맛있게 튀에스테스가 그 아이들을 맛있게 먹고나서 아트레우스는 '너는 너의 아들들을 먹었어 맛있지?'라는 말을 튀에스테스에게 말하고 튀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를 저주한다. 그리고 튀에스테스는 (기억으로는) 그의 딸과 관계를 맺어 '아이귑토스'를 낳고, 그 아이귑토스가 아가멤논의 부인인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정분이 나서, 교묘한 계략으로 아가멤논에게 복수를 한다.
요약하자면 아트레우스(아트레우스 부인의 정분남) -> 튀에스테스(튀에스테스의 아들들을 구워 삶아 먹음) -> 아트레우스(아가멤논의 살해) -> 튀에스테스(클뤼타이메스트라의 피살) 의 형식으로 복수를 주고 받은 격이라고 말할 수 있고, 만일 여기서 오레스테스에게 다시 그 복수의 방향이 돌아가면, 그것으로 인해서 끊이지 않는 '복수'가 이어지는 것이 되므로, 복수의 연쇄는 인간 문명에 굉장한 위협이 된다.
하지만 아테네의 법정은 그 복수의 연쇄의 단절을 행한다. 아테네는 설령 살해를 했다고 하더라도 왜 했는가에 대한 따져 물음을 행한다. 사실 이 과정에서 오레스테스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변호한다. '살해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형법 제 12조 강요에 의한 행위), '자신은 죄를 사함을 받았다.'가 그것이다. 이 이후에 11인인지 아니면 10인인지 분명하지 않은 재판에 해당 '사안'을 표결에 붙이고, 그 과정에서 가부동수로 오레스테스는 사형을 면하게 된다.
비록 마지막에는 판사의 '견해'이기 보다는 다수에 의한 견해에 의해서 판결이 난 바 있기 때문에 판사의 위치에 있는 아테네의 논리가 잘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꽤 아쉽지만, 오레스테스가 제시한 "살해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아레스'의 강요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다." 라는 발언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책임조각 사유. 형법 제 12조에서 '강요에 의한 행위'가 입증되었을 때, 객관적- 주관적 조각사유에서 설령 위법성(예를 들어 살인이나 과실치사)이 징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의 문제에 있어서 순수하게 자신의 '의사'로 인해서 발생한 살인이 아닐 경우, 그리고 그것을 규범적으로 예방가능하다고 사료되지 않을 때, 위법성이 인정된 바 있는 '죄책'을 조각한다. 라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이에 대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본다면, 엄격한 사실관계하에서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객관적 귀속'을 비록 규정되지 않았지만 따져보았다고 추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따져 물음'에 대한 문제가 잘 논거된다면, 설령 사람을 살해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정당화 될 수 있기 때문에, 따져 물음의 과정에서 그 행동의 정당성이 구조된다면, 그 사람의 죄책은 조각된다. 하지만 이 따져물음의 과정에서 그에게 '책임'의 소재가 있다면 이것은 조각되기 어렵다.
어떤 사람이 살인 행위를 저질렀다. 살인 행위를 유발시킨 소재의 책임이 만일 자신에게 있다면 그것은 조각 사유가 되지 않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정당한 이유에서 사람을 살해했다면, 이것은 조각되어야 함이 분명하다. 살인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화 되지 않는다고 말하나, 행위의 살인이 아닌 행동의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있음에 분명하다고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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