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실과 온라인에 병존하면서 너무나도 많은 '생각'들을 쏟아내다보면, 그 생각들의 깊이라는 것은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꽤 중요하다고 할만한 '문제의식'을 갖고 그 문제의식이 제기될 필요성을 고민하여 잘 다듬어지게 글을 뽑아내는것이 필요할진데, 글을 단순히 '많이' 쓰고 타인과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혼란을 줄 뿐더러 스스로를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점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페이스북에는 글을 쓰는 비중을 좀 더 줄이고 잘 잡혀진 글들을 몇 개 쯤 올리는 것이 좋지 않나 싶다.

2. 이번 여름방학 때 시간을 마련하여, 누군가를 만날 생각이다. 그 사람은 아마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마 충분한 '예견가능한 근거'들을 다양한 '상징'을 통하여 마련해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혹은 그녀가 그 순간에 맞닥뜨리면 뭐 좋은 방식으로 반응할 것임에는 예측할 수 없지만 나는 기대해 본다. ...

사람과 사람의 정신은 마치 그 짝을 잃은 퍼즐과 같아서, 비슷한 모양의 경험을 가진 사람은 마치 두 퍼즐을 나란히 올려놓는것과 같지만, 각자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의 경우에는 퍼즐조각이 맞춰지듯 잘 떨어지지 않는다. 후자의 경우에는 그 짝을 찾기 위해서 오랜 탐색과정이 필요하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쉽사리 서로에 대한 배려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혹은 그녀가 이 제안을 수락해주었으면하는 나름 소망이 있다.

3. 오늘 이교수님하고 했던 이야기의 결론은 나는 어떤 '응용'과도 쉽게 맞지 않으니 차라리 '이론'으로 넘어가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법학이라는 학문에 해석학도 물론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성문법의 경우에는 주어진 최소한의 공리나 공준에 근거하여 쌓아가는 일종의 논리작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은 공리나 공준을 통해서 무엇을 만들어내는가가 중요한 작업이지 공리나 공준을 의심하여, '왜 공리나 공준이 세워져야 하는가'를 의심하는 순간 그것은 법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학을 하는 것과 가깝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좋은 예시로는 탄소나노튜브를 가지고 어떠한 실용적인 체계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따지는 것은 공학적인 방식인데, 탄소나노튜브의 개별 구조를 분리하여 그것의 발생성질을 따지는 것은 자연과학의 부분이다. 자연과학과 공학이 연결된 부분이 있지만, 그것이 '구분' 된다면 그 두가지가 엄밀하게 같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잘 분석하라고 행동하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일단 이론과 응용을 구분해야 하는데.. 이론도 현실과 전적으로 떨어져나올수 없고, 응용도 현실만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볼떄, 이론도 실용적으로 사용될만한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명확하게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결정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교수님은 하버마스의 법이론에 대해서 공부해보는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바 있다.

4. 규범에 호소해야만하는 인간만큼 나약한 인간은 없다. 정녕 강한 인간은타인을 자신의 권위 아래 복속시키는 자인데, 나약한 인간들은 이런 강한자들의 '행운'과 '힘'을 시기한다. 나약한자들은 강한자들을 시기하고 험담하며 비루하고 나약한 힘들을 모아서 규범을 만들고 강한자를 억누르고 그들을 자신들과 같은 약한 인간으로 만들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경멸할만하다.

나약한 사람들에게 필요한것은 그들의 오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존중받는 느낌만을 제공해주면 되는 것이오, 굳이 실질적인 '존중'은 해 줄 필요가 없는것이다. 공정하고 올바른 사회라는 이상은 강한 소유욕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강한 '힘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을 구속하여 기존의 체제를 준수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 그들의 살아있는 강인한 영혼을 규범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낚아채고, 약한자의 몸뚱아리속에다가 가두고 그들로 하여금 약한자를 위해 봉사하게끔 만드는 것은 그 오만하고도 경멸할만한 인간들이 하는 비루한 행위이다.

저열한 자들은 마치 러셀이 귀납의 문제를 지적했던 부분과 같이, 밥을 정기적으로 주는 언젠가는 목이 비틀려 추수감사절 식탁위에 오를만한 칠면조와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다.

당연이라는 말은 의심의 결과 정말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에만 사용해야 한다. 친구이기에 당연히 돕는다는 말은 위험하며, 당연히 베풀어야 한다는 말은 규범적이기까지 하다. 규범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규범에 대항하는 인간의 합리까지 비합리로 매도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덕을 칭송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Posted by 종합유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