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내가 가진 '분노'는 발전의 원동력일지 모른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지향하는 바에 대한 치명적인 모욕감을 느낄만한 자극을 받게 될 경우, 일반적으로 난 내가 지향하는 바를 더욱 포괄적으로 해석했을 때 상대방의 주장 역시 내 주장내에서 설득가능하다거나, 혹은 상대의 논리를 전적으로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내 논리내에서 설득가능한 더욱 세련되고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을 주로하는데, 사실 이런것을 하게되는 원인은 대체적으로 문제를 느낀 상태에서 발생하는 모욕감이 이끄는 충동 때문인 경우가 많다.

예를들어 타인의 주장의 납득하지 못할 사실이나 혹은 엄격하지 못하다는 부분에 대해서 나는 극도의 강박에 가까운 분노를 표출하고 그것의 개선을 상대에게 요청하는데, 상대에게 그것이 수용되지 못하고 상대가 그것을 무례하게 반응할 때 나는 종종 굉장한 분노를 느끼고, 그 분노에서 모욕감을 느낀다. 이 모욕감은 상대에 대한 굉장하고도 강한 증오와 더 나아가서 상대방에 대한 복수의 심적상태를 야기하는데, 그 복수의 심적상태는 대개 '상대의 주장이 어떠한 이유에서 말이 안 되며 왜 내 방식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것은 정신질환과 스트레스 그리고 상대의 논리에 덧 붙여져 '왜 상대처럼 생각해서는 안 되는가?'하는 것에 대한 나름 생각한 치밀한 반박이다.

어떤 발전이 있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뤄야 하는것처럼, 발전된 논의를 하기 위해서 스트레스를 누적하여 생명을 갉아먹어야만 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나름 분노를 가지는것도 좋지 않겠나 싶다. 나름 짧고 굵은 멋진 삶 아닐지, 죽음을 향해 달리는 급행열차에 탄 기분은 얼마나 신선한가?

 사실 태어나자마자 죽는것이 정말 제일 행복할지도 모른다. 나비효과 감독판 엔딩의 결말이 그것이지 않던가, 끊임없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한계 때문에 고민해야하는 상황에서 미래에 올 어떤 것에 대해서 결정론적 앎을 가질 수 없다고 한다면 혹은 시간의 흐름(글쎄 변수라하기에는 시간을 아직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다.)에 따라서 그 오차범위 역시 가늠하기 어렵다면, 그와 같이 태어나자마자 혹은 태어나기전에 죽는 것이 고통없는 최선일지도.

Posted by 종합유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