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수능날이 되면 그 감회가 어딘지 모르게 새롭다.

나는 특히 고기를 좋아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시험을 잘 보기를 바랬었는지 수능 보기 몇일 전부터 주구장창 고기를 해 주셨다. 매일 매일 시중에 나온 사설 문제지 하나 하나를 시간을 재어가면서 풀었던 나는 첫 수능을 본다는 막연한 기대감과 더욱이 기대감에서 오는 불안감이 있었다.

수능 전날 집에는 지금은 별로 교류가 없지만 교감으로 근무하고 계셨던 외숙모가 보내주셨던 팥이 들은 찹쌀떡과, 아버지 친구분이 보내주셨던 페레로로쉐, 라파엘로, 란드누아 삼종 세트와, 가정의학과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사촌누나가 보내준 건강보조제인 머리 맑아지는 물 여타 그 밖의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마루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잡다한 물건들은 나의 주변인들이 내가 보는 수능에 지대한 관심이라고 갖고 있는 마냥 집의 한 구석에 잔뜩 쌓여 있었다. 한창 공부하고 나와서 마루의 한 부분을 보면 그것들이 쌓여... 있는 모습에서 나는 '내가 수능을 본다.'는 사실을 재확인 했으며, 새삼 그것들이 하나의 부담으로 와 닿았던 것 같다.

첫 수능은 그랬었던 것 같았다. 긴장은 됐으나 나름 잘 준비되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내가 시험을 보는 것인지 보지 않는 것인지 사실 나로써는 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막연했었다. 예비소집일날 학교에서 수험표를 받아왔고 마지막으로 수학을 점검한 후 그 다음날을 준비하기 위해서 불을 끄고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덮고 누워 어두컴컴한 창문 밖의 하늘을 바라 보았었다. 조용히 이어폰을 귀에 끼우고 잠을 청했다.

수능날 아침, 새벽 5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시험장에서 조금 더 공부할 시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7번이고 봤던 책 세 권을 혹시 몰라서 가방에 넣었다. 어둠이 사라지고 파아랗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면서 '어떻게 되었든 잘 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차만 어떻게 좀 태워주시면 된다고 말을 했었는데 어머니와 같이 시험장에 들어가는 떄까지 보겠다고 하시던 나의 아버지는 수험장까지 따라오셨고 기어코 내가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 순간까지 같이 계셔주었다. 시험장 정문에서 알던 학교 선생님은 나의 손에 시험 잘 보라고 하시면서 따뜻한 캔 커피를 꽉 쥐어주셨고 어딘지 모를 부담감으로 시험을 보러 들어갔었다.

그 때 만큼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은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일은 별로 없으며, 단순한 수능이라는 하나의 시험을 보기 위해서 집중되었던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어찌보면 기묘한 하나의 원시 부족의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 비유가 적절하지 않았지 싶다. 어린 아이가 성년식을 거치고 나오면 어른이 되어 나오듯, 수능이라는 단순한 시험은 마치 '성년의 의제'와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 성년의 의제가 아무리 단순한 것이라도 그 아이의 '성인화'를 상징하는 것임을 생각해본다면 굉장히 단순하지만 그 주변 사람들의 '막연한 기대'는 어찌보면 이해할만하기도 하다. 수능이라는 관문은 한국 사회에서의 하나의 의식행위와 같아, 나이에 비해서 치루는 늦은 성년식은 아니었을지.

그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나는 그 '첫 수능'이 참 기억에 남는다. 매번 수능시험과 관련된 뉴스를 보면 당시의 기억을 새삼 떠올려 보는데, 분명 당시에는 힘들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언제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말하고 싶다.

Posted by 종합유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