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 이야기에서 좀 더 논의 될 필요가 있는 생각을 정리해서 올린다.

난 현재가 아닌 때에 다음과 같이 주장한 적 있다. "인간의 행동은 경험한 것에 의해서 개연적으로 결정된다. 개연적으로 결정된다함은 필연적으로 결정된다함의 유예한 표현이다. 여기서 경험한 것은 다음 두가지로 구분 될 수 있는데, 하나는 대상을 경유하여 획득한 '감각적 앎'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을 경유하는 것이 아닌 경험에 대해 반성하여 획득한 감각적 앎의 연쇄에서 추론적으로 도달하는 '지성적 앎'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 생각해 본 결과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렇다면 나의 판단은 매번 새로운 도화지 같을 수 있겠느냐'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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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인간이 경험적으로 획득한 것을 근거로 판단한다면 매순간 의식적이든 자기의식적이든 결과적으로 사고의 판단의 근거와 사고의 개연적 원인은 과거에 획득한 경험에 의해서 판단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일진데, 그렇다면 T1에서의 1+1=2와 T2에서 1+1=2 가 '같은' 경험적 추론에 근거하여 등장할 수 있는가는 어려운 문제이다.

6개월전만 하더라도 나는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졌는데, 나는 감각적 앎(예를 들어 색, 소리, 특정한 고통과 같은 피상감각)에 대해서 의심한다면, 나는 어떠한 판단조차 내릴 수 없음이 그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약간의 자세한 설명을 붙인다면 종적 횡적 논의에서의 '개념성'은 어떻게 구조되느냐는 질문으로 논의할 수 있을터인데. 사과 A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과 A를 T1과 T2에서 감각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T1과 T2에서의 사과에 대해서 나는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좀 더 협의로 들어간다면, 난 사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빨간 색종이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고 대상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것들을 연장적인 개념체계하에서 받아들였지만 실상 따져볼때 시간연속에서의 다른 구간에서 위치해 있는 물체 A에 대해서의 같음에 대해서는 엄밀하게 순수 감각적으로는 논증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이것은 사과나 빨간 색종이를 상상하는 경우에도 내적 사유에 대한 감각적 앎을 통한 연장에서도 같이 적용될 수 있음을 나는 생각한다. (전자는 횡적 구성에 후자는 종적 구성에 해당한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 개념이라는 것은 이것과 같은 방식에서의 연장가운데 성립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사유속에서 개념들을 사람들은 빨강이나 파랑과 같은 굉장히 잘 나눠진 다른 개념으로 생각함에 분명하나 사실은 처음부터 엄밀하게 나눠져 있다고 보기 힘들며, 나눈 것처럼 '느낄'뿐인 감각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빨강을 의심하지 않고 빨강임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그 빨강임은 내 사유속이 빨강임에 대한 완전히 특수한 개념 체계가 있다는 믿음에 불과하며 이는 확증할 수 없고, 순전히 의식의 흐름이라는 강위에 놓여진 기름의 흐름이라고 보는것이 더 적합하다는 이야기이다.(여기에는 더 논증이 필요하다)

나는 그래서 개념적 연장에 대해서는 개념적 구분 이상의 구분이 불가하다고 본다.

어쨌건 앞의 긴 이야기는 각설하고(논의될 것이 많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서 지금 봉착한 문제는 나의 지금의 의식적 판단이 만일 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직간접적으로 판단되는 것이라면 (의식이라는 호문클루스를 통하여) 결국 지금의 나의 판단의 근거는 과거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결정되어있다고 할 수 밖에 없으며 그렇게 본다면 나는 지금의 판단은 이미 결정된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봉착한다. 그렇다면 나의 의식상태를 엄밀하게 구분하는것는 결국 결정된 것인데, 경험이 경험을 분절하는 괴의한 상황이 발생하기 된다. 여기서 나는 출생자가 다시 피출생자를 낳는 상황을 용인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봉착한다.

난 여기서의 해법을 사실 출생자가 외형적으로 출생자로 보일뿐 사실 기존의 관계에서의 피출생자가 기존의 관계에서의 출생자에 의해 츨생된 출생자임을 보일 수 있다면 이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트릴로지의 2편의 주제인 운명에서 자유의지를 어떻게 경험과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가를 검증해야 하는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종합유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