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배고픔이란 걸 몰랐습니다. 아니, 그건 내가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가정에서 자랐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한심한 의미가 아니라 나는 '배고픔'이라는 감각이 어떤 건지 똑똑히 몰랐던 겁니다.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배가 고파도 허기를 느끼지 못했지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주위 사람들이 "그래 바고프지? 우리도 그런 기억이 있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아주 배가 고팠거든. 아마낫토는 어때? 카스텔라도 빵도 있단다"하며 부산을 떨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타고난 알랑방귀 정신을 발휘하여 "배가 고파요"하고 중얼거리며 아마낫토를 열 알 정도 입에 쑤셔 넣었습니다. 그러나 공복감이 어떤 건지는 짐작조차 못했습니다.
나는 물론 이것저것 잔뜩 먹었지만 그래도 공복감 때문에 음식을 먹은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진귀하다고 생각되는 음식을 먹었지요, 호화로운 요리를 먹었지요, 다른 집에서 내온 음식은 무리를 해서라...도 대부분 먹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내가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때는 우리 집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중략)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은 내 귀에 그저 기분 나쁜 위협으로 들립니다. 그 미신은-지금도 내게는 어쩐지 미신으로 생각됩니다만-언제나 나에게 불안과 공포를 줍니다. 인간은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래서 일을 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는 말처럼 내게 난해하고 까다롭고 게다가 협박같은 느낌을 주는 건 없었습니다.
즉, 나는 인간의 행위를 아직까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나의 행복관과 세상이모든 사람들의 행복관이 전혀 다르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고, 나는 그 불안 때문에 밤마다 전전긍긍하며 신음하고 발광할 지경에 이른적도 있습니다.
나는 도대체 행복한 걸까?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종종 행복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스스로는 항상 지옥 같다고 생각했답니다. 오히려 나에게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던 사람 쪽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훨씬 안락해 보였습니다.(중략)
그러니까 모르는 겁니다. 남의 괴로움이 어떤 성질이며 어느 정도인지 아예 짐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피부에 와닿는 괴로움, 단지 밥을 먹으면 그걸로 해결될 수 있는 괴로움, 하지만 그거야말로 가장 격렬한 고통으로 나의 열 가지 재앙 따위를 날려버릴 만큼의 처참한 아비지옥인지도 모른다.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용케도 자살하지 않고 미쳐버리지도 않고 정당을 논하고 절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생활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는 걸 보면 그들은 괴롭지 않은 게 아닐까? 이기주의자가 되어, 더구나 그걸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스스로 의심한 적이 한번도 없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수월하다. 그러나 인간이란 건 모두 그렇고 또 그래서 만점이 아닐까? 모르겠다. .... 밤에는 푹 잠들고 아침에는 상쾌할까? 어떤 꿈을 꿀까?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돈? 설마, 그뿐만은 아니리라. 인간은 밥을 먹기 위해 사는 거라는 말은 들은적이 있지만 돈을 위해 산다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아니 하지만 그렇다면.... 아니 그것도 모르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더욱 알 수 없어지고 나 혼자만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은 불안과 공포에 줄곧 사로잡혔던 겁니다. 나는 이웃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익살이었습니다.』
-1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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