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5. 7. 2. 00:19

1. 허연 스마트폰의 스크린 위로 검은 커서가 껌뻑거린다. 커서에 따라 내 눈도 껌뻑거린다. 껌뻑거리는 커서 위에 어떤 말로 글을 써야 그나마 내 의도가 그럴듯 하게 전달될지를 고민하는 내가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참말로 어려운 일이다. 어떤 개념어를 선정해야 상대가 내 의도를 이해할지. 혹은 상대에게 있어서 거부감이 들지 않을지. 또한 유사한 그룹에 묶여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내 의도가 잘 전달되는지 몇 번이고 고민하곤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글을 쓰고. 써내려간 글을 보면서 글을 다시 지워올린다. 너무 의도를 드러내서도 안 되고 너무 표현이 괴상해서도 안 된다. 결국 써내려간 글을 종료버튼을 눌러 몽땅 지우고 스마트폰을 이불 위로 던지고 누워서 매미소리 웅얼거리는 여름 어두운 방안의 천장을 조용히 바라본다. 생각을 정리하자.. 생각을 정리하자..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생각이 정리되기는 커녕 가면 갈수록 생각이란 놈은 ...꼬여들어가 문장 흐름을 어색하게 만든다.

 

조용히 눈을 감아보자. 내 손은 무엇이고 내 정신은 무엇인가! 내가 손으로 써내는 것이 내 정신의 그것을 그대로 적어낸다는 필연적인 관계는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자. 아!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와 글이 혼연일체가 된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쓰여짐으로 나와 떨어져 독립적인 것. 주술에서 행하는 제의의 광기와 같이 10개의 손꾸락을 정신에 맡긴다. 허연 스크린 위에 세마디의 손꾸락들이 춤을 춘다.

 

 

 

 

2.


"넌 낭만이라고는 모르는 놈이야!"

 

지금은 나와 연락이 거의 두절된 그분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낭만이라. 낭만이 무엇일까. 대충 그 분의 맥락에 따르자면 낭만적인 관계라함은 상대를 기망하는 말을 서슴치 않는 것이다. 그 또는 그녀에게 마치 내가 별이라도 따다줄 것만 같은 허위 사실을 적시해 상대로 하여금 나에게 모종의 기대를 하게끔 해야하는 것이 낭만인 것이다.

 

평생 손에 물도 묻히지 않게 해준다던지. 아니면 평생 당신만 바라보겠다는 현실적으로 지키기란 매우 어렵고 지킬 경우에 상호 혹은 일방에게 매우 높은 손해를 유발시킬 계약을 청약하는 것이 낭만이라면. 그것은 마치 나의 아버지에게 대형펌에 입사할 시일이 요원하지만, 종종 '대형펌에 입사하면 어머니와 12박 13일 호화 크루즈 여행을 보내주겠다.'는 준사기로 받아들여질 말을 하는 그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 역시 말에 있어서 종종 무책임했지만 누군가에게 말에 무책임하다는 이유로 문제시되고 싶지는 않았다. 상대에게 무책임한 말을 내뱉으며 이후에 무책임한 말에 대한 책임 문제에 시달리며 스스로 자학을 할 바에야 차라리 상대에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하는것이 상대로부터 나에 대한 신뢰를 재고하고, 좀 더 소통의 목적 적합성에 더욱 가까운 그런것이 아니겠는가.

 

듣기좋은 달콤한 말. 그 말을 뱃속에서 고아 목구멍까지 처올려 내뱉고 싶다. 던져버리고 싶다. 목표를 정확히 겨냥해서 관통하고 상대를 기망 현혹하여 내가 원하는 답을 더욱 효율적으로 듣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을. 그래서는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신뢰를 형성할 수 없는 것을. 다시금 침을 삼키며 목구멍 밑으로 겉만 화려하여 듣는 사람만 좋은 말을 밀어 넣는다.

 

사랑이란 말을 모른다하여 사랑이란 말을 하게하는 격정이란 감정뒤에 있는 그 심상을 모르는 것이 아니거늘.

낭만이란 말을 모르고 낭만이란 말을 안 한다 하여 낭만이란 말을 하게 하는 격정 뒤의 심상을 모르는 것이 아니거늘.

어찌 너는 나에게 낭만을 모른다 하느냐.

Posted by 종합유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