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생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세련되게 표현하는 방식에 능숙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흐름이 자연스러운 글을 쓰는데 능숙하지 못한 학생도 글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고, 또한 능숙하지 못한 친구의 경우에는 다른 능숙하게 글을 써내는 친구에 비해서 다른 형태의 내용상의 매력이나 노력이 글 내에 감춰져 있는 것을 보게 될 때에는, 이 친구가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갖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혼자 나름 상상해보며 컴퓨터 쿨러 돌아가는 조용한 소리만 가득 차 있는 방안에서 혼자 낄낄대며 웃곤 한다.
예상외로 글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사고가 가진 성격에 많은 것을 보여준다. 어떤 글은 강인하고 굳건한 문체를 갖으며 그 결론 역시 강하게 내뱉어버리고, 또 어떤 글은 마치 느린 무술을 하듯 전체적으로 부드러우나 중요하게 주장해야할 부분에서는 마치 의도적으로 문장의 흐름을 끊어버리듯하여 보는 사람에게 낯설음을 주는 동시에 부각해야 할 중요한 점을 강조하여... 인지시킨다. 혹은 장난꾸러기의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의 글의 경우에는 약간의 오만함과 자만함이 동시에 섞여있어서 말 그대로 웃다 못해 이 친구의 ‘치기’에 마음속 작은 심술이 돋아나도 평가에 좀 더 심술을 부리는 그런 것들이다.
결국 그 가운데서 각 친구들의 글을 분석하고 평가할 때에는 나는 기억해둔 학생의 모습과 글의 흐름을 비교해보면서 나름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여리하게 생긴 여학생의 글에서 마치 전쟁의 장수의 용맹함을 볼 때에는 새삼 놀라며 ‘이 친구 무섭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겉으로는 조용하고 말함에 있어서 차분한 학생의 글에 있어서는 ‘이 친구 조곤조곤하게 잘 말하겠구나, 나중에 선생님이나 혹은 연구생하면 좋겠네.’를 생각하고, 장난꾸러기 아이의 거만하고 오만한 글을 읽을 때에는 ‘넌 아직 인간이 덜 됐구나.’를 생각하며 약간의 분노를 하지만 이것도 나름 이 친구만의 특이한 장점이 아닌가 생각하며 웃으며 넘어간다.
그렇게 쭉 글을 읽어가면서 코멘트를 첨부할 때에는, 이런 성향을 가진 친구라면 어떤 방법으로 글을 썼을 때 자신과 잘 맞을지를 고민해본다. 여리한 여학생의 용맹한 글이라면, 용맹한 글이 대개 그렇듯 글에서의 섬세함이 부족하니 좀 더 엄격 진지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해주고, 조용하고 차분한 학생에게는 너무 조곤조곤하다보면 사람들이 너무 재미가 없을 수 있다고 말하여 약간의 변곡점을 잡아주고, 오만한 장난꾸러기에게는 엄한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어 이렇게 쓰지 말라는 나름의 호통을 쳐준다.
이렇게 글을 쭉 읽고 난 뒤 문득 들었던 생각은, 과연 내가 1학년 때 혹은 2학년 때 교수님들에게 혹은 교강사님들에게 제출했던 나의 과제는 교수님에게 어떻게 읽혔을지 의문인 것인데, 내 글이 대체적으로 그렇듯, 나는 감정적이고 오만하여 대체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에 있어서 나의 강한 관심을 담아낸 글이었기 때문에 아마 평가자님들이 보시기에 흡족하지 않았을 것임에는 분명했을 터이다. 설령 좋은 학점을 주신 교수님이더라도, 이 글에 포함될 중요한 내용만 다 들어갔다고 한다면 크게 문제시 하지 않았을 것이거나, 혹은 제출한 것에 가상한 용기를 보아 좋은 학점을 주셨을 것이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아, 나는 과거의 나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저평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그런 무뢰배인 내가 어느새 다른 학생들의 글을 읽어가면서 평가자의 입장으로 전도되어 있는 상황을 새삼 보고 있다 보면, 나 같은 무례한 학생이 이런 다양한 개성을 가진 뛰어난 친구들의 글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이 적합한지 더 나아가서 나에 대한 반성이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혼자 고민하며 자책에 빠져버리는 그런 것이다.
아는 어떤 선생님은 나에게 좋은 글을 쓰는것은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것은 진정 나에게 어려운 것이다. 난 내가 읽기 좋은글을 쓰는것을 좋아하니 말이다. 아마 미래에도 지금 내가 교수님에게 제출한 글을 보며,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해서 자책할 것임은 아마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일지 모르나, 좋은글, 잘 읽히는 글, 계속 학생들의 글을 읽어갈테지만, 이런 더럽디 더러운 글들의 집합이 미래에 과거를 돌아보며 나의 글의 색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게끔 만든다는 것은, 자책도 나름 의미있는 재미를 나에게 줄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본다.
좋은 글도 중요하지만, 재미있는 글, 혹은 그 순간의 감정을 담아내었다고하더라도 말이 되는 글이라도 쓰는것이 그나마 자책을 덜하는 방법이 아닌가 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