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1. 글을 쓰다가 글에 대해서 칭찬을 받으면, 글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다음에는 어떤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상대의 기대를 맞출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보면, 어느새 칭찬한 당사자에게 만족스러운 글이 어떤 것일지 궁금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글이 보여주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에게 순전히 그 글의 형식을 맞춘다면, 그것은 정말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수요에 맞는 그럴듯한 글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상품성있는 글일 뿐이다. 남이 보기 좋게 꾸미고 치장하여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그 자체에서 나의 진실한 생각을 담아내기는 힘들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데 치중한 그 글이 '나'로부터 나온 글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정녕 의문이다. 항상 반성할 뿐이다.
2. 남극에서 냉장고를 팔고 열대성 기후의 지역에서 온장고를 파는 것이 과거에는 불가능한 것에 도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요새는 '마케팅'이라는 이름하에 남극에서 음식물 보관용 냉장고를 팔고 있으며, 덥디더운 아랍에서는 뜨끈뜨끈한 사우나 기계를 판매하고 있다. 남극의 음식물 보관용 냉장고는 미각으로 사우나 기계의 경우에는 쾌감으로, 이들은 공통적으로 사람의 즉발적인 욕구에 치중한 것들이다.
최근 옆집 개선비형이 맥주의 맛에 눈을 뜨더니, 온갖 맥주에 속성을 분석하기 시작하고 엄청난 돈을 맥주에 가져다 퍼붓기 시작했다. 맥주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 한번쯤 고민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는다고 보인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비형은 맥주를 미친듯이 사서 미친듯이 마시고 있다. 개선비형이 계량경제적으로 합리적이었다면, 자신의 예산선과 기대효익을 고려하여 중장기적으로 자신이 책을 한 권 더 사며, 맥주를 마실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과 같이 글빨이 안 받는다는 고민이 이전에 비해서 덜했을지는 모른다.
어쨌건 잔소리를 차치하더라도, 그 가운데 개선비형을 맥주의 세계로 이끌은 것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그것은 맥주가 그에게 보여주는 환상적인 미감(味感)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지? 맥주를 잘 모르는 나도, IPA나 페일에일의 교묘한 달콤함의 풍미에 흠뻑 빠져 간혹 헤어나오지 못하건만, 그를 맥주의 풍미에 빠뜨려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고, 한달에 적게는 몇만, 많게는 수십만에 이르는 비용을 지출하게 만드는 그것은, 그의 입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맥주의 맛이었으리라. 만일 그에게 쓸 돈만 더 쥐어준다면, 아마 그는 지금이라도 당장에 홈플러스를 찾아가 맥주코너의 해외맥주들을 싸그리 긁어다가 집안의 냉장고에 얹어두고 두고두고 마시리라.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쾌감이 사람을 사로잡는 방법이다.
요새 마케팅은 이런 욕구에 치중하고 있다. 몇년 전 정몽주니어가 말했던 '소비자의 니즈를 찾아야 한다!'는 구호는 고전적이다. 최근 기업의 마케팅은 소비자의 욕구를 개발하고 있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소비자는 굉장히 다채로운 니즈를 가지고 있지만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준다.'라고 외치며, 자신들의 브랜드 상품을 사람들의 즉발적인 쾌(快)와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그들은 사실은 새로운 필요를 사람들에게 부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이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필요에 의해 수요를 촉발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하이엔드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차 있으나, 조심히 뜯어보면 대체로 의도적으로 겨냥하여 만들어진 상품을 소비하지만, 입으로는 하이엔드에 주류문화의 선구자라고 외친다.
광고가 판치는 지금의 세상에는, '고객은 왕이다.' 또는 '소비는 바람직한 것'이라는 이름의 구호하에, 욕구의 절제보다 충족을 권장하고 있다. 쓸모없는 소비만이 늘어나고, 사람들은 더 많은 불만족에 시달리게 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비주의 사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