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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동물 여자. 향수, 화장

종합유추 2015. 6. 5. 10:13

육식동물

대개 화장을 두껍게 얼굴에 펴바르고 온 사람을 보면, 모종에 매력이 감지되기는 하나 불현듯 같이 떠오르곤 하는것은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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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디 하얀 고운 분으로 얼굴에 덧칠을 하고 그 위를 한겹 두겹의 알록달록한 형형색깔의 도구로 그림을 그려낸다. 한겹 한겹 얼굴 위에 화장의 겹이 늘어날 수록 본판의 얼굴은 사라진다. 마치 그 모습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도화지를 마련하듯, 얼굴 위에 특징을 싹 밀어내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듯 하여, 이미 그림의 완성의 단계에서는 자신의 얼굴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의 얼굴이 거울 앞에 떡하니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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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을 끝마치고 마지막에 '어머 오늘은 화장이 잘 되었네?'하면 새로 만들어낸 얼굴이 만족스러운 것이고 '오늘은 화장이 얼굴에 잘 안 먹네..'하면 새로 만들어낸 얼굴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다.

이런 확인은 보통 자기 확인을 넘어서서 타인의 확인을 요구하곤 하는데, 처음만난 '여성'인 친구가 '어머! 너 오늘 화장 잘 됐다!'하면 마음속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자신감은 오늘 내가 화장을 잘 하고 왔구나 하는 확신을 주곤 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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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하야디 하얀 얼굴에 분칠을 한 것처럼 그 얼굴은 아름다울지 모른다. 얼굴에 빤질빤질하니 생기가 돋는다. 얼굴에는 짙은 눈썹과 또랑또랑한 눈동자 자리하고 볼에는 말갛게 홍조가 피어오르며, 입술에는 틴트이니 뭔가를 발라 탱글탱글하니 탐스러운 앵두를 품고 있고, 머리는 찰랑찰랑하니 은은한 여성용 샴푸냄새를 풍기며 손목과 귀밑에 뿌려 바른 랑방 에끌라 드 아르페쥬의 은은한 향수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특히 나와 같이 후각자극에 예민한 사람은, 후각상피세포를 두드려대는 맹렬하고 찐득한 그 향기에 어느 순간 정신을 놓고 눈멀고 귀멀어 교수님의 수업따위야 2순위에 두고 정신없이 그 향기에 오감을 집중하곤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봄날 화사하게 피어난 꽃무더기 속에서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밭을 연상하게 하며, 울긋불긋한 꽃들이 뿜어내는 향기에 흠뻑 취해있는 모냥 눈까리를 뒤집고 미세한 향의 차이를 느끼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서히 자극이 무뎌지고 정신을 차려가면, 내 정신에 남겨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짙은 내음의 향기가 지나간 잔향이고, 탐스러운 꽃과 같은 얼굴일 뿐이다. 결국 저 사람 자체이기 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조향된 입체적인 인상만 머릿속에 남아 그녀가 아닌 인위적으로 조작된 괴물을 그리고는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섬찟하여 그 향기의 출처에 대해 정말 사람인지 아니면 사람의 형상을 지닌 여시인지 고민하며 잡아먹힐듯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며 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는 것이다.

몇 차례 이런 과정을 겪고 나서 도달하는 최종적인 결론은 화장을 포함한 일종의 꾸밈 일체는 마치 정신에 던지기 위해 예리하게 벼려내는 칼과 같아서 맞으면 치명상을 피할 수 없는 흉기를 몸에 장착하는 과정과 다름없다는 인상이었다. 그것을 장착하는 순간, 그것의 타깃은 특정되지 않아,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인 타킷이 되며 방어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올 곧은 정신을 난자당하여 갈갈히 찢겨진 채 널부러지는, 그야말로 정신의 광풍과 같은 것이고 고위기사의 사이오닉 스톰 같은 것이 아니겠는지..

같은 이유에서 화장을 짙게 하고 탄력있는 몸이나 향기, 혹은 옷을 비롯한 온갖 것으로 몸을 치장하고 다니는 여성을 보면 항상 두렵다. 나는 그들의 외모에 아름다움에 칭찬하지만 마치 그것은 호롱불을 머리에 달고 작은 물고기를 유인하는 심해의 '아귀'와 같은 것일지라 어느새 집중하지 않으면 내 정신이 갈갈히 찢겨 삼켜질 것을 우려한다.

그들은 마치 육식 동물과 같다. 그들은 정신를 주식으로 삼는 육식동물로 서로간에 자신의 이빨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확인을 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의 이빨의 날카로움을 보면서 자족을 하는 그러한 무서운 육식동물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화장을 한 여성에 대해서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파리지옥을 보고 있는 벌과 같지만 지성을 가진 존재로써 여성의 화장에 불현듯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