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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그렇지만 나는 임대인

종합유추 2015. 4. 15. 01:11

3달이나 차임을 밀린 임차인과의 계약 종료 이후 다음 계약을 위해서 내부를 정리하러 갔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사업주가 사업에서 실패한 이유는 충분한 자본금이 없어 무리하게 많은 부채를 떠 앉았다는 점과, 충분한 법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점으로 나는 생각한다. 임차인이 파산한 이유를 따지자면, 2억에 달하는 계약에서 물건만 선지급하고 계약 당사자가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야반도주를 했다는 점. (대체적으로 물건을 선지급하는 경우에는 상호 신뢰가 높은 기업에 해당한다. 아마 회계에 대한 적절한 개념이 없어서 연령에 대한 개념도 없었을 것이고, 신뢰평가에 대한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벌였던 사업의 실패를 메꾸기 위해서 과도하게 대출을 끌여다가 사업을 시작했다는 점 정도로 말을 하겠다. 리스크가 너무 높은 게임이었고, 사실상 안전성이 너무 낮았다.

창고에 있던 물건들은 이미 채권자들이 질권설정을 해놓아서 채무 변제를 받을수는 없...었고, 설령 후순위로 간다고 해도 남는게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심산이라 이 사람을 뭘 더 괴롭히나 하고 그냥 그러려니 넘겼다. 아마 법원에 경매신청을 해서 기존 채무자들은 적절한 절차를 받고 채무를 변제 받을 것임에는 분명할 것이고. 3개월간 밀린 차임의 경우에는 없는것으로 합의하고, 권리금 지급의 명목으로 합의했다.

내부를 정리하다 보니 그 사람이 사무를 보기 위해서 사용하던 책상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그 책상에는 부부간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한다든의 '덕담'을 적어둔 종이와, "OOO(상호명) 내년에는 매출 3배로!"와 같은 문구라던지, "시작은 미비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가 은행잎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행운을 바라는 2달러짜리 황금지폐가 먼지가 날리는 어둑한 책상위에서 그 색의 빛을 바랜채로 꽂히어 있었다. 부부간에 같이 쓰던 배드민턴 셔틀콕, 주방에서 쓰던것만 같은 앞치마, 상품을 배송하기 위해서 사용하던 두툼한 운송장까지 그들의 사업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2014년 4월 4일자로 인쇄된 '생명보험 가입서'를 보았고, 문득 임차인이 너무 힘들다고 울면서 전화를 걸었던 최근의 일을 상기하게 되었다.

행운을 바라는 은행잎과 행운을 상징하는 2달러의 황금지폐, 그들의 작은 소망을 적어둔 종이와, 그 부부간의 금술이 다정다감함을 보여준것만 같은 그 처량한 잔재 아래서, 그 눈먼 희망인 '행운'과 그들의 작은 소망을 기리는 것들 옆에서, 생명보험 가입서는 그 작디 작은 소원들의 인상과 대비되며 그들의 비극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마치 그것은 이미 짜여져 있는 비극의 대본과 같이 잘짜여진 무지한 자들의 추락을 보였고, 돌이킬 수 없게 그들이 파멸로 다가가고 있음을, 다시는 그 비극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실감하게 되면서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될 것을 알지만, 나는 그 가운데서 '아름다움'을 느꼈었던 것만 같다.